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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다이어리제주]21살 뚜벅이의 제주도보름살기(수지篇④)

[제주N뉴스 = 여수진 기자, 한수지 시민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3월, 가족들의 우려를 뒤로 한 채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교 3학년. 앞으로 다가올 취업이라는 무게가 나를 짖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코로나19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애써서라도 나는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보고 싶었다. 매일 저녁 과자 한봉지 들고 보던 석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제주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조금은 느리게를, 그리고 나눔을 배우게 됐다. 이번 나의 제주 여행은 그 어떤 수업보다도 값졌다. 제주도에서의 시간들을 정리해 본다.

 

제주 10일차(#안덕면 #대평리 #박수기정 #휴일로)

 

벌써 10일이 되었고, 이젠 정말 남은 날이 지낸 날보다 적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젯밤에 싸놓은 샌드위치를 들고 오늘의 길을 나선다. 오늘의 목적지는 여행책에서 발견한 곳이다. 한적한 제주의 한 동네, 대평리로 향한다.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맑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내 제주 10일 잔치라도 열어주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제주의 동네를 탐방하다 대평리 정류장에서 내리면,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풍경이 아, 여기가 대평리구나, 실감하게 한다. 적당한 사람의 온기와, 제주 특유의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공기가 몸을 감는다. 햇빛에 적당히 달궈진 길을 걷는다. 골목골목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 펼쳐지는 넓은 바다. 작은 배가 몇 척 서 있고, 그 주위엔 들꽃이 가득하다. 대평리의 마스코트 박수기정을 찾아 돌 바위를 건너본다. 발이 너무 피곤해, 제주는 온통 돌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다의 골목이 보인다. 저기까지만 가 봐야지, 하고 들어간 곳에는 박수기정이 한눈에 펼쳐지고, 내 발밑에서는 에메랄드빛 투명한 물이 자갈밭을 첨벙거린다. 아직 바람이 차갑지만 왜인지 여름 노래들이 듣고 싶어진다. 바닷물인데도 떠 마시면 수년의 갈증이 풀릴 듯한 청량감을 느끼며 봄 안의 여름을 느낀다.
 
 

 

대평리에는 식당과 카페가 많다. 골목 골목의 소담한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택한다. 카페 휴일로. 규모가 있다. 하얀 건물 외벽과 넓은 마당이 여유롭다. 실내 통유리 창 바로 앞의 좌석에 자리를 잡고 흑임자 라떼를 주문한다. 진하고 달달한 크림 맛이 든든하다. 현무암을 닮은 비주얼이 제주와 하나가 된다. 해가 저물 즘 밖으로 나간다. 대평리는 노을 맛집이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난 길을 걸으면서, 박수기정 뒤편으로 서서히 넘어가는 해와 술래잡기를 한다. 햇빛에 비치는 바다의 모양이 예뻐서 찍었더니, 그 빛이 나를 졸졸 따라왔다. 하늘이 점점 더 붉게 물들고, 바다 저편으로 빨간 공이 사라진다. 그렇게 또 한 하루가 지난다. 

 

 

제주 11일차(#가파도 #청보리밭)

 

꽤 장기간 여행을 준비하면서, 하루하루의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하나의 이번 제주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떠나기 전에 가야 하는 곳들을 나름 엄선해서 적어놓고 하나하나씩 지워갔다. 가장 위에 적어놨던 곳이 가파도였다. 청보리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물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이름만 들어도 ‘바람에 날리는 푸른 머릿결’이라는 구절이 써졌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라도, 가파도를 가는 여객선은 운진항에서 탈 수 있다. 여객선 시간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몇몇 제휴 업체의 명함을 가져가면 할인도 된다. 이 여객선은 타고 들어간 배를 다시 타고 나가야 한다. 즉, 들어가는 시간에 따른 나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섬에 약 2시간에서 3시간까지만 있을 수 있다. 나는 오후 2시 배를 타서 오후 4시 20분에 나와야 했다. 사전예매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표를 받고 항 안에 편의점을 갔더니 멀미약을 팔고 있었다.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 소요시간은 10분, 멀미약이 웬 말이냐 하고 배에 올라탔다. 배가 출발하고 2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배가 파도에 몸을 제대로 맡기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배가 울렁울렁이 아니라 울~렁 울~렁 하면서 갔다. 배에 탄 사람들이 바이킹이라도 탄 듯 그 울렁임에 맞춰 오우~! 소리를 냈다. 평소에 멀미가 심한 나는 내려서 20분 정도 걷고 나서야 울렁거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멀미가 심하다면 방심 말고 멀미약을 챙기시기를. 

 

 

우여곡절 끝에 내린 가파도, 첫인상은 엥? 이었다. 항구에서 바라본 가파도는 그냥 시골 마을 같았다. 제주의 멋이 안 나는, 평범한 항구 마을. 시멘트가 깔려있고 그 둘레로 바다가 있는 그냥 섬. 가파도에도 올레길이 있다. 상동포구에서 가파포구까지 이어지는 올레 10-1코스가 그 주인공이다. 아무래도 2시간밖에 없다 보니 걸음을 서둘렀다. 자전거를 대여해서 타고 가는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가고, 나는 올레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런데 어찌 청보리라는 건 보일 기미가 없었다. 시멘트 바닥의 연속, 혹시 아직 시기가 아닌가 불안해하며 걷다 보니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올레길 코스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던 터라 그냥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가자마자 마주친 정말 푸른 보리밭의 향연. 태어나서 이렇게 초록색을 넓게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언덕 위는 청보리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청보리밭이란다. 1만 평 정도 되는 땅이 모두 초록 옷을 입고 있다. 다른 색 그 무엇도 가미되지 않은 ‘초록’ 그 자체를 보고 있으면, 물감이 엎질러진 캔버스를 밟고 있는 것 같기도, 그 초록색에서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선명한 자연의 초록은 때로 천연 조명 판이 된다. 얼굴색이 환해 보이는 건 당연하고, 표정이 해사해지는 건 덤.

 


적당히 구역이 나누어진, 키가 크지 않은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난쟁이들에 둘러싸인 백설 공주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강아지풀과도 분간 가지 않을 정도로 작게 영근 보리 알들이 나를 올려다보는 듯했다. 바닷바람이 언덕을 타고 올라오고, 고소한 보리 냄새를 싣고 내 숨으로 들어온다. 아직 학생들을 만나지 못한 초등학교, 돈을 내라는 안내문 대신, ‘유채꽃에 묻혀 추억을 담아보세요’라는 말이 적힌 표지판, 그리고 끝없이, 끝없이 푸르른 초록. 이 풍경을 눈에 오래 담고 싶어져 섬 둘레 걷기를 멈추고 벤치에 가만 앉는다. 바람 소리가 와글거린다. 어린 보리 알들의 들뜸을 안고 언덕 위로 초록길을 내고 다닌다. 이게 봄이구나, 어린 봄이구나.

 

제주 12일차(#더리트리브)

 

여행이 끝나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직 4박 5일이 남았다. 허나 그 시간도 내지 못해 서울에서 골머리를 앓던 게 누구였더라, 마음을 다잡는다.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고 싶은 곳을 적어놓은 메모지는 이미 빗금으로 꼬질꼬질해졌다. 굳이 더 가고 싶은 곳을 찾지 않고 여유를 즐기기로 한다. 나는 여행자인 동시에, 제주에 살러 온 사람이기도 하니까.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인 카페로 간다. 무한도전 촬영지이기도 하다는 카페의 이름은 ‘더 리트리브’. 회복, 이라는 뜻을 가졌다. 가벼운 티셔츠 위에 걸치고 나온 경량 패딩 조끼가 덥다. 첫날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 조끼를 포함해 총 네 겹의 옷을 입고도 쌀쌀하다 느꼈는데, 이젠 덥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 열심히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끼익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 널찍한 내부가 포근했다. 크게 난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이치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유채꽃이 넘실댔다. 1층 책방 가판대 앞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한다.

 

주문을 마치고 보니 카운터에 큰 강아지가 대자로 누워있다. 강아지라기보단, 개. 만져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쓰다듬는데 반응도 없다. 세상 편해 보이는 강아지가 이 곳의 분위기를 알려준다. 편하다, 안락하다. 1층에는 카페와 빈티지샵이 있다. 빈티지에 큰 흥미는 없지만 한번 둘러본다. 개성 강한, 정말 중세 유럽에나 있을 것 같은 옷, 식기, 장식품들이 가득하다. 순식간에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 카페 안에 작게 있는 상점인데도 갖춘 것이 많았다. 나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수제 면마스크를 한 장 샀다. 아이스 카페모카가 나왔다. 얼음이 우유 얼음이다. 크게 감동 받았다. 커피 맛도 좋았다. 방송 때문인지, 이번 여행에 제주도에서 갔던 카페들 중에 가장 사람이 많았다. 평수는 넓은데 자리가 아주 많거나 울림이 큰 구조가 아니어서 정신없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들었다.

 


2층에는 책방이 있다. 헌책부터 신간까지, 책이 꽤 많다. 여행책, 소설책, 에세이 등등 거의 모든 종류의 책이 있는 것 같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신간 에세이를 한 권 집는다. 헌책을 사고 싶었지만 다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방에는 리트리버가 대자로 누워있다. 이 곳이 원래 이렇다. 해가 져가니 매장 내부가 조금 어두워졌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확실히 다를 것 같다. 금요일 밤에는 영화 상영도 한단다. 여행에서 지친 몸을, 제주의 긴 밤, ‘Retrieve’하는 시간을 이곳에서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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