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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리뷰

[제주N얼굴]하멜표류기의 시작 '용머리해안 하멜기념관'

[제주N뉴스 = 김용현 기자] 21살 네덜란드 청년 핸드릭은 해상무역을 장악한 동인도회사에 취업한다. 동인도회사는 중국과 일본의 향신료와 도자기를 가져다 유럽에 팔아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핸드릭은 1653년 상선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했다.

 

순항하던 스페르베르호는 태풍을 만났고, 표류하다 어느 섬 해안가에 닿을 수 있었다. 층층으로 쌓인 기괴한 모양의 절벽과 검은색의 구멍난 돌로 가득찬 그곳. 바로 탐나는 도, 제주도다. 난파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36명의 네덜란드인. 그 중 한명이 핸드릭, 즉 핸드릭 하멜이다.

 

 

하멜이 제주도를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도의 모습에 반했을까? 어딘지 모를 곳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일지 모를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 스페르베르호가 표착한 곳으로 알려진 용머리해안은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나? 용이 바다를 향해 입수하는 모습이다. 그 용의 몸은 층층이 쌓인 암석으로 이뤄져있다.

 

 

하멜은 제주도와 조선이 싫었다. 이원진 제주목사에게 체포된 하멜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 10개월 동안 감금됐고 이듬해 한양으로 압송됐다. 효종을 알현하는 자리에서도 일본으로 송환을 요구했으며, 청나라 사신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줄 것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약 14년간 조선에 억류돼 노역을 하던 하멜은 7명의 동료와 배를 훔쳐 일본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 쓴 보고서가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다. 조선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멜표류기는 그가 14년간 받지 못한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로 인해 조선이 신흥시장으로 떠올랐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조선과 직접 교역하기 위해 1000톤급 상선인 코레아호를 건조하기도 했다.

 

 

하멜은 박연에 이어 조선에 내린 두 번째 네덜란드인이다. 제주가 매개가 돼 미지의 나라인 조선을 서양에 알린 최초의 인물이다. 하멜이 표착한 곳으로 알려진 용머리해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페르베르호를 복원해 하멜전시관으로 만들었으며, 하멜기념비를 세워놨다.

 

용머리해안은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영주십경에 들 정도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봉긋한 모양의 산방산에서 흘러내려와 사계바다로 뻗은 모습이 수많은 관광객을 이끌고 있다. 진시황은 이곳에서 왕이 날 것 형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종단을 보내 용의 꼬리와 등 부분을 칼로 끊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지세가 뛰어나다. 80만년 동안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신비한 해안절벽은 장관을 연출한다.

 

 

하멜이 처음 제주도에 닿은 곳이 용머리해안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대정현 소속 차귀진 관하의 대야수라 부르는 곳의 해안가에 하멜 일행이 표착했다. 이를 근거로 용머리해안에서 하멜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하멜기념사업회는 하멜의 표착지점이 신도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사료와 문헌자료, 1969년 이익태목사가 쓴 지영록을 근거로 신도2리 해안이 표착지라며 역사를 바로 잡아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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