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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리뷰

기녀에서 제주의 의인으로...김만덕 기념관서 거상의 삶을 만나다

 

[제주N뉴스 = 황리현 기자] "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거상 김만덕의 이야기다.

 

제주를 살린 빛. 김만덕의 생애를 고스란히 담아 낸 곳이 있다. 바로 제주시 건립동에 위치한 '김만덕 기념관'이다. 

 

조선시대 나눔과 봉사의 표상으로 알려진 김만덕은 1794년 제주에 흉년이 들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제주도민들을 굶주림에서 구했다.

 

이같은 김만덕의 나눔과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만덕 기념관은 160억5900만원을 투입해 제주시 건입동 1164번지 일대 부지 1982㎡, 건축연면적 2932.38㎡의 3층 규모로 지난 2015년 1월 준공됐다. 

 

기념관의 기본 목표는 '김만덕의 정신을 담다'다. 실제 기념관 곳곳에서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총 3층 규모의 기념관은 3층 전시실부터 2층 기부센터 및 체험관, 1층 나눔교육관 순으로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이동한다. 3층 상설전시관은 김만덕의 정신을 주제로 한 전시관으로 의인 김만덕의 생애에 대한 소개와 도전 그리고 나눔의 정신을 7가지 테마로 구성했다.

 

의인 김만덕 : 만덕의 생애를 만나다 

김만덕은 1739년 김응열의 자녀 3남매 중 외딸로 태어났다. 열두 살이 되던 1750년 전국에 역병이 퍼지고 이 역병은 제주도까지 내려와 김만덕은 부모를 잃고 어려운 처지가 됐다. 

 

그녀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생명 연장을 위해 기생의 몸종으로 들어가데 된다. 그러다 열심히 일하는 김만덕은 기생의 수양 어머니의 눈에 띄어 혹독한 기녀 수업을 받고 관청에 소속된 행수기생이 된다.

 

그러나 김만덕은 스물세 살이 되던 해 기생의 신분을 벗고자 관아로 찾아가 기생의 신분을 지워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사또 저는 본래 양인집안의 자식이었으나 굶어 죽지 않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 앞가림을 할 나이도 됐으니 기적에서 제 이름을 빼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사또! 소녀 비록 천하고 개 같이 돈을 벌었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큰 돈을 벌게 되면 반드시 우리 백성들을 위해 귀하게 쓸 것이니 제발 한 번만 제 말을 믿고 청을 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김만덕은 기생의 신분을 벗고 양인이 돼 객주를 차린다.

 

만덕정신, 도전 : 제주의 거상 - 물산객주 : 양인신분 회복 후 거상이 된 김만덕

객주란 상인들의 물건을 대산 팔아 주거나 상인과 상인 간의 거래를 도와 돈을 버는 상인을 뜻한다. 

 

양인 신분으로 회복한 김만덕은 포구가 지닌 상업적 중요성을 미리 읽고 건입포구에 물산객주를 차려 장사를 시작한다.

 

만덕의 장사 원칙은 "싸게, 그러나 많이 판다", "알맞은 가격으로 사고 파다", "정직한 믿음을 판다" 였다. 그녀는 박리다매(薄利多賣), 곧 하나하나의 이익은 적게 보는 대신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기녀 생활의 경험을 살려 제주 양반집 부녀자나 기녀들에게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을 싼 가격에 팔면서 그 양을 점차 늘려나가면서 큰 이익을 남겼다.

 

 

또한 정가매매(定價賣買), 곧 적정한 가격으로 사고파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큰 이익이나 눈앞의 이익을 보려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적정가격으로 변함없이 상거래를 했다.

 

처음에는 전라도에서 쌀을 사들이고 제주도의 특산물인 약재, 전복, 갓 등을 육지에 팔면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만덕의 사업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객주 활동 외에도 여관과 식당, 장신구, 옷감, 특산물 거래 등을 해 오래지 않아 큰 부자가 됐다.

 

 

만덕정신, 나눔 : 흉년으로 힘들던 제주기민들을 살려내다

만덕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늘 검소하게 살면서 ‘풍년에는 흉년을 생각해 절약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야한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1795년 제주도에는 극심한 흉년이 여러 해 계속되면서 식량 부족으로 10만 명이던 인구가 3만 명까지 줄었다. 정조는 제주도로 쌀을 실은 배를 출발 시켰지만 태풍 때문에 배가 그만 침몰하고 만다. 이에 만덕은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풀어 쌀 3백 석을 기부해 죽어 가던 제주도 백성들을 구해 낸다. 당시 김만덕이 살린 백성의 수가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은혜로운 빛, 김만덕 : 의녀반수, 금강산 유람길을 떠나다

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김만덕의 선행을 듣고 크게 칭찬했고 ‘성은’에 힘 입어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고 ‘의녀반수’라는 명예 관리에 오르게 된다. 만덕은 금강산 구경뿐 아니라 한양과 궁궐 구경도 하게 된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섬 밖 출입이 철저히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김만덕의 임금 알현은 매우 큰 상이었다.

 

3층 전시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의 생활과 제주의 특산품들, 당시 제주도의 객주에서 취급한 물건과 함께 각종 자료와 멀티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김만덕의 업적을 알았다면 나눔의 의미 새기고 체험하는 공간인 2층 나눔 실천관으로 이동한다. 이 곳에서는 나눔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나의 나무 지수를 체크해 볼 수 있다. 나눔 약속 타임캡슐에 참여하고 나눔 사전을 함께 만드는 체험도 준비돼 있다. 

 

1층 나눔 문화관은 나눔문화가 퍼지는 열린 문화공간의 역할을 한다. 김만덕의 전신상을 관람할 수 있고 나눔관련단체, 동호회 등 모임 및 재능기부를 지원하는 열린 나눔커뮤니티룸이 있다. 

 

 

김만덕기념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관람시간 30분전 입장마감)까지이며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명절에는 휴관한다.

 

# 과거 객주 그대로 재현 '김만덕 객주'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출출하다면 김만덕 기념관에서 5분 거리, 김만덕의 옛 삶을 재현한 '김만덕 객주터'를 추천한다.

 

 

2016년 4월 1일 개장한 김만덕 과거 객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 곳에서는 빙떡, 순대국밥, 빈대떡과 막걸리 등 옛 객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판매한다. 과거 김만덕 객주가 현대판 객주로 재탄생한 것이다.

 

 

초가집 8동으로 만들어진 내부에는 만덕 고가 밖거리, 안거리, 창고와 객주 안거리, 밖거리, 주막으로 이뤄져 있다. 옛 객주를 둘러보다 보면 민속촌을 관람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